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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 토목 건축의 최고 걸작, 실로암 기혼샘 수로

by 저스트바이블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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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시각 장애인이었던 사람의 눈을 고쳐주신 실로암은 히스기야 왕 시절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침략에서 구한 히스기야 수로의 가장 끝부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실로암과 기혼샘까지 연결된 히스기야 수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부스족의 예루살렘 지하수로

히스기야 왕의 수로 공사를 이해하려면, 예루살렘에 난공불락 성을 구축하면서, 출애굽 후 가나안 정복에 나선 유다지파와 예루살렘을 배분받은 베냐민 지파도 400여 년간 몰아내지 못했던, 가나안 여부스 족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의 개념보다는 훨씬 작고 좁은 개념이지만 기드론 골짜기, 힌놈 골짜기, 튜로페온 골짜기 삼면의 골짜기에 둘러싸인 천연 요새에 성벽을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을 방어했던 여부스 족속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늘 골머리를 썩었습니다. 여부스 족속이 시온성에서 400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이스라엘이 포위해서 장기전을 펼치더라도 식량과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여부스족이 기혼샘에서 시온성까지 지하수로를 뚫었기 때문입니다.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결심했고, 그 결심이 서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그때까지도 여부스족이 굳건하게 차지하고 있던 시온성을 공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하 5장 8절을 보면 다윗의 군대가 여부스족의 허점을 노렸는데 아무도 생각 못했던 물 긷는 데 즉 기혼샘과 연결된 지하수로로 올라가서 여부스의 성과 군대를 공략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은 예루살렘 성은 더 확장되었고 성벽을 견고히 보강해 다윗 성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앗수르 침략에 따른 히스기야 왕의 수로 확장

수대에 걸쳐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앗수르의 침략이 임박하자 하나님 앞에 바로섰던 히스기야왕은 이 지하수로를 보수하고 확장했습니다. 역대하 32장 3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히스기야 왕은 용사들과 백성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모든 샘들을 파괴했습니다. 이는 기혼 샘이 예루살렘 성 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었기에 사용 가능한 전략이었고, 앗수르 군이 사용할 식수를 막는 동시에 예루살렘 성의 수원지는 지켜서 여부스 족속처럼 장기전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부스 족속이 지켜낸 산성보다는 12배 가까이 확장된 예루살렘 성과 백성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 동편 비탈길 기드론 계곡 위쪽에 위치한 기혼 샘은 매일 하루 2백만 리터의 물을 뿜어내는 용천수였지만 예루살렘 서쪽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사용하기에는 거리상 문제가 있었기에 히스기야 왕은 윗샘 기혼 샘부터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실로암까지 연결되는 지하 수로 공사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최근 고고학자들이 수로를 면밀히 분석한 연구 결과는 놀랍습니다. 기혼샘부터 실로암까지 히스기야 왕이 판 지하 수로의 길이는 약 533미터라고 하며, 기혼샘과 실로암 사이 고저 차이를 0.06% 즉 30센티미터 내외로 완만하게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되 흐르는 물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서 앗수르군이 이 수로를 발견할 수 없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또한 나중에 발견된 히스기야 수로 터널의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이 수로가 샘의 한쪽에서 파고 들어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파고 들어간 후 가운데에서 만나 완성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수로를 지탱하는 바위의 균열을 피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지하 암석지대의 틈을 따라 일직선 통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통로로 팠으며, 양쪽에서 파고 들어가 만나는 지점의 오차도 1.2m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일부 고고학자들은 다윗 왕 등 선조의 묘실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S자 형태로 터널을 팠다고도 하지만 어찌 됐든 간 히스기야 수로 터널은 당대 토목공학의 정수라고 불릴 만큼 놀라운 업적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수로 터널의 건축 과정은 공사에 참여한 석공이 제작한 비문을 통해 알려졌고 고고학자들은 이 비문을 실로암 비문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수로를 만들고 앗수르 대군을 맞선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셨고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하루아침에 치심으로 앗수르 산헤립의 침략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낮은 자세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았던 히스기야 왕과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역사적 장소인 실로암 수로에서 예수님께서 날때부터 보지 못한 자에게 새 빛을 보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심은 서로 연결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역사의 풍파를 거치면서 ‘이곳이 연못이었다고?’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휑한 풍경을 주는 관광지이지만, 이 실로암과 실로암으로 흐르던 물은 사실 구약 시대 가장 치열했던 앗수르 산헤립왕의 침입을 막고자 이스라엘 성을 방어 요새로 만들고 장기전을 벌이기 위해, 히스기야 왕과 이스라엘 최고의 토목 건축가들이 만들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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